회화 속 동물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 상징으로서의 동물
근대서양미술사 속 동물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상징으로서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짚고, 시대별로 그 의미를 분석한다.
1. 서론: 근대서양미술사와 동물의 상징성
“회화 속 동물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 상징으로서의 동물.” 이 말은 근대서양미술사에서 회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이 시대와 제작 맥락에 따라 단지 장식이 아니라 복합적인 메시지를 담았다는 사실을 말한다. 본문에서는 르네상스부터 로코코, 낭만주의, 표현주의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동물의 상징적 역할을 시대별로 구조화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르네상스 시대 – 고전과 성서적 상징의 회복
르네상스 회화에서 동물은 여전히 중세의 상징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자연과학적 관찰이 더해진 정교한 해석으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시시리아 여인과 흰 담비》에서 담비(ermine)는 ‘순결’과 고귀함의 상징으로 선택되었는데, 이는 중세 베스티어에서 유래된 관념적 의미를 르네상스 회화 어법으로 풀어낸 사례이다. 이처럼 고전적 모티프와 기독교적 상징이 결합되었다.
3. 바로크와 초상화 – 충성의 개, 교활한 고양이
3.1 초상화 속 개와 충성
바로크 시대 초상화에서 개는 ‘충성’, ‘결혼의 신의성실함’, ‘재산ㆍ혈통의 안정성’을 시각화한 대표적 상징이었다. 대표적으로 플랑드르 화가 반 다이크가 그린 귀족 초상화에 개가 곁에 있는 경우가 많다. 개는 단지 ‘함께·친족’이 아니라 주인의 덕목을 상징하는 구성적 요소였다.
또한 잔 올랑드의 명작 《아르놀피니 부부 초상》에서 작은 애완견은 부부의 충실함과 미래의 다산을 의미한다.
3.2 풍만한 고양이와 교활한 성욕
같은 시대 한편 고양이는 “모성 또는 야망”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성적 유혹, 기만, 변덕 등의 부정적 이미지로 작품에 등장하는 경우가 흔했다. 대표적으로 티치아노의 <올랑피아>에서 검은 고양이는 여인의 유혹과 성적 속성을 상징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이처럼 바로크 초상화 속 동물은 흰 개든 검은 고양이든 단순한 장식이 아닌 “이상을 드러내거나 경고하는 상징이었다.”
4. 계몽주의와 자연주의 – 야생과 인간성의 대비
18세기 영국 계몽주의 조류 속 회화들, 특히 조지 스터브스(George Stubbs)의 작품들은 자연의 야성미와 힘을 통해 근대인의 인식 변화를 반영한다. 《A Lion Attacking a Horse》(1762년경)처럼, 왕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야생의 사자와 말은 “야만성과 공포, 인간 내면의 폭력을 대리하는 은유”로 그려졌다. 이 시기의 동물회화는 ‘이성과 감정’이라는 계몽주의적 이분법에 질문을 던지는 상징이었다.
5. 낭만주의에서 표현주의로의 이행
5.1 낭만주의적 동물 이미지
낭만주의기 화가들, 예컨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같은 경우 자연 속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영적 감응을 주목했다. 사슴, 까마귀, 늑대 등의 동물은 인간의 고독, 구원의 갈망, 자연과의 일체감으로 해석되었다.
5.2 표현주의자 프란츠 마르크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화단의 중심 인물인 프란츠 마르크는 동물을 ‘순수하고 더 본질적인 존재’로 보고 붉은 사자, 파란 말, 노란 소 등을 통해 인간의 감정·영적 에너지, 타락과 희망을 표현했다. 그의 『파란 말들』(1911)은 동물의 색채로 남성성, 영성, 폭력을 상징화하는 대표작이다. 그는 동물 자체가 고유한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믿음 아래, 인간 중심 사고를 거부했다.
6. 동물 상징의 지속성과 변용 – 근대서양미술사에서의 관점
근대서양미술사를 관통하는 흐름을 보면, 초기 르네상스부터 20세기 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동물은 끊임없이 ‘의미를 가진 배우’로 등장했다.
- 중세 기록화에서 동물은 ‘신의 창조 세계’의 일부이자 도덕적인 교훈의 매체였고
- 르네상스 작가들은 동물의 자연사를 관찰하고, 상징을 과학과 연결시켰으며
- 바로크는 초상화에서 동물을 통해 인간의 속성과 사회적 정체성을 강조했고
- 계몽주의 이후 자연주의에서는 동물이 자연 속 야성과 문명의 긴장을 시각화했고
- 표현주의자들은 동물을 영적 공간과 인간 외부의 시선으로 전유했다.
이 흐름이 보여주는 것은, 동물은 항상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이다—절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7. 회화 속 동물들은 결코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회화 속 동물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 상징으로서의 동물.” 이 제목에서 시사하듯, 근대서양미술사는 동물을 활용해 시대별 철학, 종교, 심리, 사회적 메시지를 시각에 담아냈다.
- 개는 충성과 혈통, 여성의 덕목을 강조했고 –
- 고양이는 유혹, 배반, 성적 열망을 은은히 드러냈으며 –
- 야생 동물은 인간과 자연, 문명과 본능의 경계를 상징했다 –
- 20세기에 이르면 동물은 인간 중심 서사의 대안적 시점이 되었다.
즉, 회화 속 동물은 늘 누군가를 대신해 말했고, 어떤 순간에는 인간보다 더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했다. 그들은 단지 풍경 속 혹은 인물 곁에 놓여 있던 조연이 아니라, 종종 중심에 가까운 기호였다. 이를 깊이 음미할수록 미술 작품의 해석은 훨씬 다층적인 풍부함을 갖는다.
후기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의 동물 재해석
르네상스부터 표현주의까지 이어지는 근대서양미술사 흐름은 20세기 초 초현실주의로 진입하면서 동물이 현실과 무의식을 잇는 다리로 탈바꿈했다. 살바도르 달리에게 코끼리는 욕망과 권력, 생명력과 부력을 다층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으로 등장했는데, 그의 다리 길쭉한 코끼리는 욕망이 실제를 넘어서는 무의식의 비유이다. 멕시코계 초현실주의 화가 레메디오스 바로는 그림 속 고양이·부엉이·새와 인간 hybrid를 등장시키며, 동물들이 인간 내면의 감정·지성·신비와 물성을 동시에 공유하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맥스 에른스트의 ‘Two Children Are Threatened by a Nightingale’같은 작품에서는 새가 주인공 아이들의 내면을 위협하거나 유도하는 무의식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새는 영혼의 상징’으로 읽히지만, 에른스트에게는 죽음, 트라우마, 성(Macabre)의 공존체였다.
이 시기의 동물 상징은 근대서양미술사가 단순한 주제적 인용에서 늙은 상징 체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언어 중심’으로 이행하던 전환점을 보여준다.
생태미술과 동물의 새로운 선언
1960년대 이후의 환경미술 또는 랜드아트 경향은 동물을 회화 속의 피사체가 아닌, 조각·설치·환경 자체의 삶과 연결된 주체로 다루었다. 예컨대, 작품 속 인공 둥지, 하이킹 사료 공간 등에 토종 조류나 곤충을 유입시켜 살아 있는 생태계와 함께 실존하는 예술로 진화했다.한편 여성 에코 페미니스트 예술가 낸시 맥코는 꿀벌(honeybee)을 매개로 여성의 공동체·침묵·변화의 상상력을 시각화하며, 벌이 상징하는 사회적 생존력과 생태적 메시지를 교차시켰다.
이러한 흐름은 근대서양미술사에서 동물을 단지 서사적 코드로 활용하던 것에서 벗어나, 생명 있는 존재로서의 주체, 곧 예술 가시성 그 자체가 되는 ‘존재 선언’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여성주의 예술의 동물 코드
1970년대 이후 페미니스트 아트에서는 동물이 여성의 권력과 역사적 폭력성에 대한 전복적 은유로 활용되었다. 유타주 예술가 메리 베스 에델슨(Mary Beth Edelson)은 트릭스터 같은 여신형 동물을 몸의 표식으로 삼아, 여성의 욕망과 신체 인식을 유머·풍자로 해체했고, 이탈리아 페미니스트 작가군도 동물형 자화상을 통해 가부장제 풍자와 권력 구조 해체를 시도했다.
이 흐름에서 동물은 전통적으로 “순종·관찰”되는 대상이 아니라, 차이를 드러내고 사회적 규범을 흔드는 ‘차이의 매개자’로 재정의되었다.
오늘날 디지털과 사회운동 속의 동물
21세기 들어 디지털 미디어나 가상현실, NFT, 인스타그램 기반 아트 등에서도 동물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반복·재전유되고 있다. 반려동물‧야생 동물‧멸종 위기종 사진은 대개 ‘인간의 시선’ 중심으로 해석되지만, 최근 예술가들은 AI나 VR을 통해 “동물이 된 시선” 또는 “비인간 감각”을 체험자에게 체득시키는 방향으로 동물 상징을 재편하고 있다.
또한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에 대한 활동 속에서 ‘코끼리’, ‘지니아’, ‘산호’ 등 멸종 위기종이 메시지를 내는 언어로 작동하며, 단순한 배경이 아닌 동등한 발언자로서 포지셔닝된다.
근대서양미술사에서 동물 상징의 전환과 지속성
- 상징 → 주체: 초창기 근대에서 동물은 인간 품성 상징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에서 무의식과 감정의 언어로 올라섰고, 1970년대 이후 여성주의와 생태적 개념 아래에서 감각적·정치적 주체로 재정립되었다.
- 시각언어의 레이어화: 동물 상징은 단일한 코드가 아니라 색채·조각·비디오·VR 같은 매체 간 층위로 연동되어 전달된다.
- 해석 주체의 이동: 전통적인 미술사 해석이 남성 중심인 동물 도상 해설에 의존했다면, 오늘날은 여성 예술가·환경활동가·비인간 주체가 해석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처럼 근대서양미술사적 흐름에서 동물은 더 이상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메시지를 구성하고 발화하며, 철학과 윤리의 장(場)으로 들어서는 존재였다. 이 개념은 오늘날 미술과 사회가 서로를 반영하며 확장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