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술 속 흑인 모델의 정체는 누구였을까?
근대서양미술사 속에서 19세기 회화에 등장하는 흑인 인물들은 대부분 무명이고 익명인 ‘모델’이었다. 이 글은 당시 예술가들이 어떤 흑인 모델을 기용했는지, 그들의 정체는 누구였는지를 탐색하며, 그 과정이 미술사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해석하고자 한다.
1. 서론: 근대서양미술사와 흑인 모델의 존재
근대서양미술사에 있어 19세기는 신고전주의에서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이자, 사회·문화적으로도 제국주의와 인종 문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시기이다. 이 시기 미술작품 속 흑인 모델은 단지 ‘이국적 소재’나 ‘장식적 요소’로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그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
2. 흑인 모델 – 익명에서 벗어나기
2.1 이름 없는 얼굴들
서양 미술사에서 19세기에 등장하는 흑인 인물은 대부분 출신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 배경으로 기능하거나 이국적으로 그려졌다.
심지어 Salon 회화나 아카데미 작품에서는 흑인을 단지 조연처럼, 컬러 대비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2.2 미술계의 흑인 모델 재발견
하지만 최근 근대서양미술사 연구자들과 큐레이터들의 노력으로, 연구 대상이 된 흑인 모델들이 일부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런던에서는 자메이카 출신으로 빅토리아 시대 프리라파엘파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한 패니 이튼(Fanny Eaton) 이 있다.
3. 대표적 사례: 이름을 가진 흑인 모델들
3.1 마리 굴레민 브누아의 “Portrait of Madeleine” (1800)
근대서양미술사 흐름 속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이름과 신분이 밝혀진 사례는 프랑스 화가 브누아(Marie‑Guillemine Benoist)가 1800년 **“Portrait of Madeleine”**을 그린 작품이다. Madeleine은 과들루프 출신 노예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해방된 후 브누아의 시댁 가문에서 일하던 하인이었다. 그런데 이 초상화에서 그녀는 당당하게 의자에 앉아 있으며, 붉은 끈과 흰 옷의 색조는 당시의 프랑스 혁명 상징과 연결되며, 여성·인종 해방을 암시하는 회화로 해석된다.
3.2 런던에서 활동한 패니 이튼 (Fanny Eaton)
패니 이튼은 19세기 중반 런던에서 여러 Pre‑Raphaelite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했다. Joanna Boyce Wells의 “Head of a Mulatto Woman” (1861)에 등장하며, 다른 화가들에게도 포즈를 제공했다. 그녀는 이름이 알려진 몇 안 되는 흑인 모델 중 하나다.
3.3 파리 아카데미의 조세프(Joseph)
파리 아카데미(l’École des Beaux‑Arts)에서 1830년대부터 활동했던 흑인 남성 모델 Joseph 은 여러 유명 화가의 드로잉과 회화 연구 소재가 되었다. 그는 인그르, 샤세리오, 브륀 등 당대 아카데믹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했으며, 동시대 언론에서도 “파리 아틀리에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로 회자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에서는 조롱 섞인 묘사도 존재했고, 당시 인종차별적 편견에 노출되기도 했다.
4. 왜 이름을 남기지 않았을까? 익명성과 제도적 맥락
4.1 제도적 구조 속에서 흑인 모델
19세기 파리나 런던의 미술 교육 기관, 스튜디오는 흑인 모델을 비정기적으로 고용했고, 계약서나 문서화된 기록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흑인 모델은 생존을 위한 노동자로 여겨졌고, “종속된 존재”로 처리되었다.
4.2 백인 중심 미술사 서술과 백색 시선
아카데미 중심의 근대서양미술사 서술은 전형적으로 백인 작가와 백인 모델을 강조했다. 흑인 모델은 ‘장식’ 혹은 ‘이국주의’를 상징하는 조연으로만 인식되었고, 그들의 개인적 배경은 배제되었다.
5. 흑인 모델이 미술사에 남긴 의미
5.1 형식 실험과 현대미술의 기초
흑인 모델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색조 대비·인체형태·질감 실험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프레데릭 바지유(Frederic Bazille)의 “Woman with Peonies” 원제에 ‘Negress’가 포함되어 있던 작품은 피부 톤 대비와 색채감 연구에 기여했다.
5.2 현대 큐레이터와 예술가의 재해석
최근 전시 『Le Modèle noir: from Géricault to Matisse』(오르세 미술관)와 Denise Murrell의 『Posing Modernity』 기획은, 이름 없이 소비되던 흑인 모델을 중심에 놓고 재해석함으로써 근대서양미술사에 대한 시선을 전환하고 있다. 여기에 포함된 작품들은 여러 작가가 흑인 모델을 단순한 외형이 아닌 ‘주체’로 바라보려 했던 시도다.
6. 흑인 모델의 정체: 정리와 질문
- Madeleine: 과들루프 출신 하인을 넘어, 해방 이후 회화 속에서 존엄을 띠는 인물로 재탄생했다.
- Fanny Eaton: 런던에서 활동한 드문 이름 있는 흑인 모델, 다수 작품의 소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배경 인물로 묘사되었다.
- Joseph: 파리 아카데미 모델로 활약했으며, 여러 유명 화가의 스터디 대상이 되었지만 인종적 편견과 사회적 지위의 한계를 계속 경험해야 했던 인물.
이들 사례는 19세기 근대서양미술사에서 “흑인 모델은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얼굴들은 무명으로 남아 있고, 이름 없는 모델들은 미술사 속에 비가시적으로 존재한다.
7. 정체를 묻는 서사에서 이름을 붙이는 책임으로
근대서양미술사에서 19세기 회화 속 흑인 모델들의 정체는 대부분 알 수 없으나, 일부 인물이 연구되고 드러남으로써 그 의미가 재평가되고 있다. 이름 없는 흑인이 단순한 색채 효과 이상으로 회화의 형식과 현대 미술의 기초에 기여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들의 정체를 묻고 이름을 붙이며, 존엄을 부여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참고 문헌 및 전시
- Le Modèle noir de Géricault à Matisse, Musée d’Orsay 전시
- Denise Murrell, Posing Modernity: The Black Model from Manet and Matisse to Today
- Joanna Boyce Wells, Fanny Eaton 초상화 및 관련 연구
- Marie‑Guillemine Benoist, Portrait of Madeleine 작품 연구
- Joseph 모델 관련 기록 및 파리 아카데미 자료
8. 근대서양미술사에서 빛난 흑인 인물 모델들
8.1 Manet의 Laure
19세기 후반 파리에서 활동한 흑인 모델 Laure는 Édouard Manet의 대표작 Olympia (1863)의 검은 하녀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또 Children in the Tuileries Garden에도 등장하며, 같은 복장과 헤드타이로 시각적 연속성이 확보됩니다. Manet는 자신의 노트에 그녀를 "une très belle négresse"로 기록했지만, 이름 외 생애 정보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현대 미술가 Elizabeth Colomba는 Laure를 중심 주인공으로 재해석해 회화 속 거리 장면에 배치하며, 이름 없는 인물에게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근대서양미술사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8.2 'Miss La La' – 데가의 서커스 댄서
에드가르 데가의 Miss La La at the Cirque Fernando (1879)에는 흑인 곡예사 Miss La La가 웅장한 자세로 묘사됩니다. 본명은 Anna Albertine Olga Brown으로, 프러시아 출신의 혼혈 아티스트였으며 파리 예술가들에게 모델로 초빙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시각적 인물로서가 아니라, 근대 도시 공간과 공연 문화의 교차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8.3 북아프리카인 모델 Salem, “Prince of Tombouctou”
파리에서 활동한 사하라 출신 모델 “Salem”은 Prince of Tombouctou라는 이명과 함께 북아프리카 신화를 시각화한 이미지에 활용되었는데, 제국주의적 관점으로 기획된 세트와 설정은 그를 예술적 도상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자들은 그의 정체성 회복과 서사화를 통해 근대서양미술사 속 타자성 문제를 다시 질문하고 있습니다.
9. 흑인 모델의 근대서양미술사적 재평가 흐름
9.1 구조적 외면과 최근의 복권
서구 중심의 근대서양미술사 내에서는 흑인 인물이 단순한 배경 소품이나 장식적 장치에 머물렀던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학계와 전시 기획자들은 이러한 구조적 외면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실존했던 인물들에게 이름과 삶을 돌려주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대표적으로 Denise Murrell의 Posing Modernity 전시가 그러한 문맥에서 확장된 논의를 견인하고 있습니다.
9.2 예술적 주체로 조명되는 흑 인물 모델
현대 예술가들 Elizabeth Colomba와 Maud Sulter, Mickalene Thomas 등은 역사적 회화 속 주변 인물들의 삶을 상상하고, 주체로서 해석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Colomba는 Laure를 중심으로 역사적 거리 풍경을 새로 그려 넣었고, 이를 통해 이름 없는 흑인 모델들이 경험했을 삶을 시각화합니다. 그 결과, 근대서양미술사 해석이 단순한 형식 분석을 넘어 사회적 문맥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변화 중입니다.
10. 왜 여전히 “무명”인가? 제도와 기록의 맹점
10.1 기록되지 않은 노동자로서의 흑인 모델
대부분의 흑인 모델들은 일시 고용된 노동자였으며, 아카데미나 미술 스튜디오에 정식 문서로 남지 않았습니다. 계약 및 급료 기록도 성실하게 보관되지 않아, 예술가들조차 구체적인 신원을 알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름을 복원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록의 공백을 채우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10.2 인종차별적 시각과 예술 시장
19세기 미술 시장은 백인의 시선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흑인의 미성숙하거나 이국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예술가들은 흑인 모델을 포즈 연구나 극적인 색 대비를 위한 대상 정도로만 여겼고, 이는 작품에 나타나도 이름은 마치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배제되었습니다.
11. 앞으로의 질문과 전개 과제
- 더 많은 사례: 아직 수도 없이 많은 흑인 모델들이 기록에서 사라졌습니다. 연구자들의 과제는 미술관 소장품, 자료 기록, 가족 구전 등을 통해 더 많은 인물을 복원하고 이름을 부여하는 일입니다.
- 제도적 명명: 근대서양미술사에서 이들 인물이 ‘익명’에서 ‘주체’로 자리잡으려면, 출판물·강의·전시·카달로그에서 이름 언급과 서사 보완이 필수적입니다.
- 학문과 대중의 재해석: 일반 관람객들도 “Olympia 속 모델은 누구인가?”, 혹은 “Miss La La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며, 전시 해설과 교육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2. 요약 및 전망
- 근대서양미술사에서 19세기 흑인 모델들은 이름 없이 소비되었지만, 현대에는 일부 사례를 통해 그 정체성과 위치가 드러나고 있다.
- Laure, Miss La La, Salem 등 다양한 인물들이 학계 및 예술가에 의해 재해석되며 주체성을 회복 중이다.
- 이러한 흐름은 단지 인물 복원이 아니라, 근대미술 서사에 대한 탈인종주의적 재구성과 재해석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흑인 모델의 이름 없는 얼굴들은 이제 서서히 근대서양미술사의 중심에서 목소리를 찾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이 단순한 ‘의상이나 장식’이 아닌, 자신만의 삶과 권리를 지닌 인물이라는 사실을 재인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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